악의가 있는 게 아닌 건 알고, 있다면 오히려 순수한 감사와 애정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긴 하겠는데
어떤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그 순수한 감사와 애정이 일종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게 '순수함'의 결정적인 결함이다.
'아~ 아직 모르는 구나. 그 느낌, 감정, 고통, 괴로움- 그걸 안 겪어봐서, 모르니까 저럴 수 있겠구나.' 라는 부러운 마음도 드는데
'순수한 감사와 애정'에서 비롯된 감동과 애도, 위로와 조언의 말들이 일종의 감정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내가 간혹 느끼는 저 '부러움'도 그 사람들의 순수함에 대한 내 오만함이 아닐까 싶긴 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내가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태도라고 느꼈던 사람은 아부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장례지도사 분이었다.
많아야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던 그분은 나름 독특...한 상황에서 유가족 대표랄까 뭐랄까, 일종의 상주 노릇을 하고 있던 어린 나를
일말의 불쾌한 동정적 태도 없이 섬세하면서도 정확한 말과 표정, 존중이 드러나는 눈맞춤으로 대했고
그런 와중에도 조문객을 맞이하고 돈계산을 해야 하며, 술 취한 진상들이 아부지와의 인연을 자랑하며 희롱에 가까운 농담에다
장례절차에 무지한 나에게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이래도 된다,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온갖 참견을 해대는 알 수 없는 어른들에게
질려있던 터라, 보기 싫은 친척들이 가득한 아수라장을 벗어나 그분과 대화할 때가 가장 평온하고 차분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분의 직업적 특성이 그분을 그렇게 단련시킨 것인지, 타고난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을 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여기며, 나도 꼭 그렇게 불쾌하고 불필요한 감정흘림 없는 배려를 갖추고 싶었다.
만, 타고남이 결여됐는지 노오력이 부족한지 한 3%도 못 하고 있긴 하지.
예전에- 정말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만, 어떤 연예인의 불행(혹은 재난)과 관련해 우리 팬분이라고 밝힌 누군가가 우리뎅을 언급하며
'우리오빠도 정말 걱정 많이 하고 계세요.' 라고 쓴 글을 보고 신화팬이며 우리뎅 팬인 나는 머리가 띵- 해지는 걸 느꼈었다.
알아. 악의가 있는 게 아닌 건 알고, 있다면 오히려 순수한 걱정과 관심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긴 하겠다고.
그런데 그 팬분 사고의 중심은 '저 일로 걱정하는 우리오빠'와 '그런 우리오빠가 안타까운 나'이지 아무 관심없는 어떤 연예인은 아니잖아.
그냥 '아무일 없었으면, 쾌차하셨으면,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걱정과 위로만으로도 좋았을 텐데.
참- 벌써 아주 오래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A.D.D.A'를 몰라서 'Lost Sddar'를 귀엽다고 즐겁게 웃던 분들에게 많이 서운했었다.
모를 수도 있지. 뭐, ABBA도 모르고- Queen도, 프레디머큐리도, 다이애나로스와 슈프림스도 모를 수 있는 건데-
그런데 당연히 모를 수 있다는 걸 다아 알아도 서운하더라고.
정규 시즌 내내 에러라곤 상상조차 할 수없던 우리 최강 내야수가 코시 1차전에 몰아서 실책을 범하고 질 수 있다는 것도 알기는 한다니까.
뻔히 아는데도 아, 왜에 지금! 여기서! 오늘!! 하고 울컥하잖아. 그런 거지 뭐.
제발 누군가의 고통을 '내 오빠의 모에와 내 오빠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나'를 전시하는 데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 분들은 당연히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며, 이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상상 못 하실테다. 그래서 어렵고 그게 복잡한 거지.